직업사례 ⑩ 안성빈 | 복음을 전하는 그루터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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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사례 ⑩ 안성빈 | 복음을 전하는 그루터기교회 목사

노태형 0 2380

 

안성빈 |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루터기교회 목사

  

어느 날 하나님은 안성빈 너여야만 한다, 젊고 건강하고 똑똑한 목사들이 많지만 누가 고통 받는 장애인 앞에서 성도의 고난을 설교할 수 있겠느냐, 그 일은 반드시 너여야만 할 수 있다며 저항하던 그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중증장애인에게 용기를 주는 목회자

안성빈 목사는 오른 손 일부 이외에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러나 주일에는 교회를 섬기는 목사로, 평일에는 사단법인 로이사랑나눔회의 희망방송에서 소외계층을 후원하는 사업을 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설립한 그루터기교회(예장합동)의 성도들 대부분은 중증장애인이거나 중증장애인과 동행한 가족, 활동지원사들이다. 성도들은 예배 시간조차 누군가 옆에서 성경책을 넘겨주어야 하고 찬송가를 찾아줘야 하는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영적인 갈급함은 누구보다 절실하고 강하다.

중증장애인들은 일반 교회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준다고 해도 적응하기 힘든 점이 많습니다. 지나친 관심과 배려가 오히려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하여 영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요. 장애를 가진 성도가 함께 모여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년간 절망과 눈물의 나날

1998년 안성빈 목사는 응용통계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목뼈 속 종양이 원인이 되어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갑자기 쓰러졌는데 온몸을 쓰지 못하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 5년간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과 눈물의 나날을 보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것이 억울하고 고통스러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든 케어를 해주었는데 2004년 아버지한테 암이 발병했어요.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아버지가 저 때문에 병원을 못 가신 거예요. 어머니 혼자서는 내 다리 한 짝도 못 든다는 걸 아시니까요.”

안 목사는 자신이 쓰러질 때보다 그 때가 훨씬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시고 그는 잠시 결혼한 여동생과 매제의 신세를 졌으나, 곧 자립을 결심하고 신천역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처음으로 혼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52월이었는데 그때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실시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한 달에 60시간 활동지원사를 배정받았다. 나머지 시간에는 교회 후배들, 친구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도와주었다. 그들마저 없을 때에는 혼자 방치되어 밤에 대변을 싸고 다음날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어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거든요.”

그러다가 송명희 시인의 권유로 장애인 CCM 콘테스트에 참가해 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찬양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희망새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고, 700여회 사역을 하며 활동하다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20152월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31, 그루터기교회를 개척하여 첫 예배를 드렸다. 예배처소가 없어서 희망방송(구로구 가산동 소재) 사무실을 빌려서 사용했다. 지금은 송파구 가든파이브로 옮겨서 주말에는 예배당, 주중에는 장애인단체인 사단법인 로이사랑나눔회의 사무실로 쓰고 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안에서조차 장애인이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일 뿐입니다. 장애인에게 선물을 주고 소풍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장애인 사역을 다 한 것처럼 여겨지는 풍토가 싫어서 그루터기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재정의 40%를 구제와 선교에 사용

예전에 그는 목회자를 불신하고, 항상 저항했다.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안성빈 너여야만 한다, 젊고 건강하고 똑똑한 목사들이 많지만 누가 고통 받는 장애인 앞에서 성도의 고난을 설교할 수 있겠느냐, 그 일은 반드시 너여야만 할 수 있다며 저항하던 그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의 종이 된 안성빈 목사는 중증장애인 성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하고, 받은 은혜는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증장애인 교회이기에 늘 도움을 받는 처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놀랍게도 교회는 설립 때부터 재정의 40% 이상을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로이사랑나눔회와 연계하여 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을 돕고 있다.

201711월부터 안성빈 목사가 대표로 일하고 있는 로이사랑나눔회의 희망방송도 장애인의 희망을 열어가는 곳이다. 희망방송은 장애인 예술인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희망콘서트를 열면서 장애인 예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소규모이지만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정 문화지원사업과 결손가정 등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후원사업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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