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스토리 – 이달의 주인공 (2026년 7월)[성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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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스토리 – 이달의 주인공 (2026년 7월)[성우경]

이미경 0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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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를 긋지 않고 '할수 있다'는 믿음이 결국 나를 변화시킨다. "


1.인물 소개

 

Q.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A. 안녕하세요.저는 현재 52세로, 2009년 소중한 인연을 만나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사고 전에는 상근예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으나, 1996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경수2, 3번을 다치며 척수장애라는 큰 시련을 맞닥뜨렸습니다.  하지만 절망에 머물지 않고 약10년간 휠체어 럭비 선수로, 감독으로 현장을 누볐으며, 현재는 탁구,슐런,헬스,육상 등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끊임없이 삶의 활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재활원 소속 강사로서 경남 지역의 학교와 기관을 찾으며,아이들과 교직원들에게장애발생예방교육을 전하는 뜻깊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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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애이야기 


Q. 척수장애를 입게 된 계기와 당시의 상황,그리고 그때의 심경은 어떠셨나요? 


A. 청춘이 찬란하던23, 1997629일 새벽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교통사고는 제 모든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구급차로 이송되던 희미한 순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해 차량의 뺑소니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책임보험에만 의존해야 했고, 집안의 경제적 고통은 날로 깊어졌습니다.  그런 아들을 위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낮없이 손발이 되어주신 분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습니다.어머니의 눈물 어린 간병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다시는 걷지 못한다'는 현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가장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은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닌,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무심코 던진 조언들이었습니다.  “이제 너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해라는 말부터 경제적 문제, 이성 교제에 이르기까지 위로를 빙자해 던져진 수많은 말들은 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고, 되풀이되는 상실감 속에 자존감은 덧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Q. 장애 이후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이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A. 꺾여버린 신체적 한계,그리고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제 자신이 자꾸만 작아지고 위축될 때가 가장 다스리기 힘든 순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두운 시련에 내 삶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구원의 밧줄이 바로스포츠였습니다.

재활 훈련을 마친 후 경남 지역 최초로 휠체어 럭비 선수단을 직접 창단했고, 고통 속에 숨어있던 동료 척수장애인들을 찾아내 함께 땀 흘리며10여 년간 선수로, 감독으로 코트를 누볐습니다.

 

그곳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체육 활동으로 지평을 넓혔으며, 국립재활원 강사로 임명되어 세상 밖으로 더욱 당당히 걸어 나왔습니다.  현재는 탁구와 슐런을 즐기며, 지나간 아픔을 돌아보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과 내일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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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극복과 도전


Q. 장애 이후 새롭게 도전하신 일이나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스포츠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채워가던 중,제 인생 가장 선물 같은 존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처 이모님의 간병을 위해 먼 길을 내려왔던 천사 같은 아내와 마음을 나누며 연애를 시작했고, 2009년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자연임신으로 소중한 아들이 찾아왔을 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거룩한 행복에 젖어 들었습니다.  저를 간병하며 평생의 눈물을 다 쏟으셨던 어머니와 저는 아이를 안고 감동의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 순간은 제 삶의 참된 시작이었습니다.  ‘나를 믿어준 이 따뜻한 가족을 위해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가장으로서의 깊은 책임감과 사랑이 저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열정으로 매진한 체육 활동에서는 출전하는 종목마다 순위권에 드는 값진 결실을 보았고, 최근에는 바다로 나가 선상 낚시에 도전하며 가슴 뚫리는 스릴과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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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제 삶의 이유는 오직 하나, ‘가족입니다. 부족한 저의 울타리가 되어준 아내와 눈부시게 자라주는 아들은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터전입니다.

 

               “인생은 결승선까지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라

                           가는 길에 피어난 예쁜 풍경들을 얼마나 많이 가슴에 담느냐의 여행이다.”

 

라는 말처럼,이제 저는 남들과의 속도 경쟁에 연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길가 보도블록 사이에 소박하게 피어난 작은 들꽃 한 송이까지 눈에 담을 수 있는, 깊고 여유로운 삶의 풍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싶습니다.


4. 협회와의 인연

 

Q. 경남척수장애인협회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A. 현재 창원시지회장을 맡고 계신 김해일 회장님과의 소중한 인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척수협회가 설립되기 전 마산에서 최초로 탁구 모임을 만드셨을 때, 제게 장애인 탁구 지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세상 밖으로 막 걸음마를 떼는 동료 장애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기꺼이 함께했고, 이후 창원시지회가 공식 발족하면서 회원으로서 오랜 세월 동고 동락하며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협회 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보람찼던 순간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A. 매년 창원시지회 동료들과 함께 떠나는고성 글램핑행사는 늘 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정성껏 준비해 주신 따뜻한 한 끼를 나눠 먹으며 밤새 담소를 나누고, 론볼 게임을 하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그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또한 2024년 가족 프로그램이었던 불편함도 누려보자라는 컨셉의 볼링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이었습니다.  경수 장애를 가진 제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볼링공을 손에 쥐고 레인 위로 굴려보았을 때의 그 짜릿함은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최근 거제 가두리 낚시터에서 묵직한 참돔을 낚아 올리며 온 가족이 터뜨렸던 환호성 역시, 협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얻은 잊을 수 없는 삶의 힐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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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메시지와 비전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으신가요? 


A. 국립재활원 강사로서 더욱 진심 어린 교육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의 아픈 경험이 담긴 장애발생예방교육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제 삶의 사명이자 국가적 결실이라 믿습니다. 나아가 내 사랑하는 가족의 무탈한 행복을 지키고, 동료 척수장애인들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을 위해 작게나마 지속적인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Q.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척수장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격려의 말씀이 있다면요? 

 

A.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린 내 모습과 마주했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아득하고 기가 막힐지 감히 잘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무너져 내린 그 자리에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하루빨리 일상의 삶으로 걸어 나오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스로에게 안 된다는 한계를 긋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는다면, 우리의 몸은 그 상태에 맞게 반드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손톱 밑에 낀 가시도 내것이 가장 아프다" 는 말처럼, 내가 느끼는 고통은 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고통을 진정으로 안아줄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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