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석 교수가 환자에게 100가지 질문을 준비시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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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교수가 환자에게 100가지 질문을 준비시키는 이유


[인터뷰] 더크로스 김혁건 씨 주치의 국제성모병원 이범석 교수

26년 간 척수 환자 1만여명 진료…성 재활, 방광 검진 등 고안

김 씨의 복귀 과정서 외래 진료, 보조장치 의학 자문 등 나서

"상실감과 분노 큰 척수 환자,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야"



환자와 의사 사이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고들 한다. 의사는 ‘3분 진료’ 현실 속에 진료에 치이고, 환자들은 그런 의사들에게 큰 기대감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6년 동안 1만여명의 척수 환자를 치료해 온 국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이범석 교수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선 '의사 대 환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접근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마주하는 환자들이 척수 손상으로 영구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그들의 상실감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했다. 그래야만 환자들이 신체가 예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길을 함께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척수 장애인이 된 밴드 ‘더크로스’의 보컬 김혁건 씨도 이 교수가 재활을 도왔던 환자 중 한 명이었다. 김 씨는 지난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해 경추 손상에 의한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아 어깨 아래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도움의 손길, 그리고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지로 2013년 다시 무대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이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리는 HiPex 2024(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24, 하이펙스 2024)의 연단에 오른다. 김 씨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겪은 역경과 그 과정에서 이 교수가 어떻게 김 씨를 지원하고 도왔는지 등을 진솔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청년의사는 지난 29일 국제성모병원에서 이 교수를 만나 지난 26년 동안 김 씨를 비롯한 척수 환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진료해 왔는지 들었다. 그는 지난 1995년부터 국립재활원에서 근무한 후 2022년부터 국제성모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

재활의학과에서 척수 손상 분야는 기피되는 분야로 꼽힌다.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도 있지만 환자들이 척수 손상으로 본인에게 장애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분노를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 분노는 자연스레 의료진을 향할 수밖에 없기에 부담이 크다는 것.

그럼에도 이 교수는 약물 치료와 근육 강직 완화부터 보조기, 휠체어 선택 등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에 척수 손상 분야를 선택했단다. 전공의 시절 저녁 근무 후 병동에서 같은 나이 또래의 척수 환자들과 수다를 떨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서 척수 환자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는 점도 전공 선택에 한몫했다고.

그는 지난 1995년부터 국립재활원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척수 환자를 위한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수익을 바라지 않는 국가기관인 만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당시 도입했던 프로그램들은 바로 척수 환자를 위한 성 재활 프로그램, 2박 3일 방관 검진, 척수 환자 자조 모임인 '정상회' 등이다. 모두 환자들과 소통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들이라고.

성 재활 프로그램의 경우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터부시되던 주제였다. 이에 그는 외국 연수를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관련 세미나, 부부 워크샵 등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이 교수는 “성 재활 프로그램은 전공의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다. 병원에서 당직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젊은 척수 환자들은 나중에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걱정하더라. 전문의가 되면 이 부분은 꼭 공부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위에서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물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환자의 호응이 좋았다. 오히려 장애인들이 보건복지부에 관련 지원 예산을 요청하기도 했다. 국립재활원이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2박 3일 방광 검진 프로그램도 척수 손상으로 인한 방광 손실로 요로 감염, 신부전 등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했다. 1년에 한 번씩 콩팥 기능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지만 외래만으로 검사 스케줄을 시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걸 느꼈다. 이에 비뇨의학과와 협력해 환자가 2박 3일동안 입원하면서 검진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국립재활원과 국제성모병원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최중증 척수 환자 모임인 ‘정상회’도 경수 4번 손상으로 목 아래로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들의 바람으로 만들었다. 환자들이 “이 세상에 나 같이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다”고 좌절하면서도 자신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한탄을 쏟아내는 것을 듣고 모임을 꾸렸다.

이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최중증 척수 환자 연락처를 수첩에 다 적어놨다. 그리고 연락해서 국립재활원에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18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모였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됐다더라. 그날 점심 때 모였는데 밤까지 모임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같이 여행, 캠핑을 가면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척수 환자 사회 복귀를 위한 첫 걸음…"환자와 신뢰 형성이 중요"

이 교수는 척수 환자들이 사회 복귀에 나서기 전 상실감을 극복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우선 환자와의 관계를 성숙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짧은 외래 시간 내에 환자에게 섣불리 예후를 말하기 어려운 만큼 상담 시간을 길게 잡고 질문 100가지를 준비해 오라고 당부한다고.

이 교수는 “척수 환자들은 재활치료를 받으면서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더라도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자고 말하기 어렵다. 척수 환자가 느끼는 상실감이 큰 만큼 분노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상담 시간을 따로 잡고 질문 100가지를 준비해 오라고 숙제를 내준다. 그리고 치료 과정과 예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환자들은 질문을 쏟아내면서도 늘 항상 마지막에는 다시 걸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며 “그럴 때 정확하게 현실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삶은 환자가 선택하는 것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현실에서 잘 적응하자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려면 “환자가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의사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크로스' 보컬이 척수 환자로서 다시 무대로 서기까지

더크로스의 보컬 김혁건 씨도 그가 진료했던 환자 중 한 명이었다. 처음부터 김 씨를 담당하진 않았지만 이 교수와 우연한 계기로 친분을 쌓으면서 외래 진료를 맡았다.

이 교수는 김 씨가 국립재활원에서 진료받을 때 유명 가수인지 몰랐다. 그러나 김 씨가 하모니카 재활 교실에서 괄목할 실력을 보이고 나중엔 강사로까지 활동하면서 그와 안면을 텄다. 젊은 환자들도 김 씨를 곧잘 따랐기에 종종 이야기를 건네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이후 김 씨가 퇴원한 후 외래를 통해 그의 건강 관리를 맡았다.

그는 김 씨가 다시 가수로서 복귀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와 함께 복식호흡 보조장치를 개발할 때 의학 자문을 맡기도 했다.

척수 환자에게 노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고음을 낼 때 일반인에 비해 폐활량이 3분의 1에 불과해 호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김 씨가 복근을 누르면 횡격막이 올라가는 원리를 통해 부족한 호흡량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후 서울대에서 그의 사정을 알고 본격적인 장치 개발에 나섰다. 해당 장치는 휠체어에 부착돼 있으며 김 씨는 휠체어의 레버를 통해 복근을 압박하는 정도를 조절하면서 고음을 낼 수 있다.

이 교수는 “당시 장기가 상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복근을 눌러야 하는지 등 의학 자문을 담당했다”며 “김 씨가 연습하는 것은 봤지만 영상으로 공연하는 것을 봤을 때 그가 들인 노력을 생각했다. 의학적으로 복근을 누르면 고음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척수 환자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명인으로서 휠체어를 타는 생활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텐데 긍정적인 쪽으로 에너지를 쓰고자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장치의 도움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했기에 노래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의사 대 환자'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야

이 교수는 김 씨를 비롯한 환자를 치료할 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은 의사가 의료적인 기술로 자신을 치료해주길 바라며 개인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의사들도 너무 힘들다. 환자과 친밀하게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연구와 진료일이 쌓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의사와 환자 간 관계를 벗어나고자 많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진료실이나 병실이 아닌 병원 내 카페 등에서 따로 만나 병실에서 하지 못하는 수다를 떨거나 간호사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재활 치료에 임하는 환자들을 격려했다”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 대 관계로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행동으로도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처 : 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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